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 1947~2022)
아랫글은 ‘문학연구방법론’ 강의에서 교수님이 배포하신 자료를 확장한 것이다.
브뤼노 라투르(1947~2022)
1. 브뤼노 라투르: 생애와 교육, 사상 개관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 1947~2022)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과학철학자이자 인류학자, 사회학자이다. 그는 과학기술연구(STS, 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와 현대 사회이론, 정치 생태학 분야에 깊은 영향을 남겼다. 라투르는 1947년 프랑스 남부 브곤(Burgundy) 지방에서 태어났으며, 초기에는 철학과 신학을 공부했다. 이후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에서 인류학적 현장조사를 하며 사회과학으로 연구의 폭을 넓혔다.
라투르는 1970~80년대 프랑스 국립광업학교(École des Mines de Paris)에서 연구를 시작해, 이후 파리 정치대학(Sciences Po) 교수 및 미디어랩 소장으로 활동했다. 그의 연구는 과학의 객관성과 중립성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며, 과학 지식이 실험실, 기술, 사회적 실천, 다양한 행위자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제조’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라투르의 대표적 이론은 ‘행위자-연결망 이론’(ANT, Actor-Network Theory)으로, 인간과 비인간(기계, 도구, 미생물 등) 모두를 동등한 ‘행위자’로 간주하고, 이들이 만들어내는 네트워크 안에서 사회적 현실이 구성된다고 본다. 그는 과학의 객관성 신화를 비판하며, “사실은 제조되는 것”이라는 명제를 통해 과학과 사회,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재구성했다.
또한 라투르는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 『파시퇴르화』, 『자연의 의회』 등에서 근대성, 과학, 정치, 생태 문제를 횡단하며,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선 새로운 정치생태학과 결합의 사회학을 제시했다. 21세기 들어 그는 기후위기, 생태전환, ‘거주가능성’ 문제에 천착하며, 인간과 비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새로운 집합체, 즉 ‘비근대적 집합체’의 정치적 상상력을 강조했다.
정리하자면, 브뤼노 라투르는 과학과 사회,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해체하고, 복잡한 연결망 속에서 현실을 탐구하는 혁신적 사상가로, 현대 과학철학과 정치생태학의 지형을 새롭게 그려낸 인물이다.
2. 행위자- 연결망 이론
브뤼노 라투르의 행위자-연결망 이론(ANT, Actor-Network Theory)은 인간과 비인간, 즉 사람뿐 아니라 동물, 식물, 사물, 기술, 제도, 심지어 미생물까지도 모두 ‘행위자’로 간주하는 급진적인 사유틀이다. 이 이론은 사회적 현실이 인간만의 행위나 의도로 구성된다는 전통적 사회학의 관점을 넘어, 인간과 비인간 행위자들이 상호작용하며 만들어내는 복잡한 네트워크의 산물임을 강조한다.
1) 핵심 개념
행위자(Actor): ANT에서 행위자는 단순히 인간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다른 존재에 영향을 미치고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모든 것—기계, 기술, 동물, 바이러스, 심지어 아이디어까지—가 행위자가 될 수 있다.
트워크(Network): 사회란 고정된 구조가 아니라, 다양한 행위자들이 끊임없이 연결되고 상호작용하는 역동적 네트워크다. 이 네트워크 안에서 현실과 사실, 제도, 규범이 ‘만들어진다’.
일반화된 대칭성: 인간과 비인간, 사회적·자연적 요소를 구분하지 않고 동등한 분석 대상으로 삼는다. 이는 근대적 인간중심주의와 과학/사회 이분법을 비판하는 라투르 특유의 관점이다.
2) 의의와 영향
과학과 사회의 경계 해체: 과학지식의 생산과 확산, 사회적 현상 모두를 인간과 비인간 행위자들의 네트워크로 설명함으로써, 과학과 사회, 자연과 문화의 경계를 해체한다.
현상 분석의 새로운 방법론: 사회적·기술적 변화, 과학기술의 발전, 정책 결정 등 다양한 현상을 분석할 때, 관련된 모든 행위자들의 관계와 상호작용을 추적해야 한다는 방법론적 전환을 제시한다.
네트워크의 재구성: 변화란 네트워크의 재구성을 통해 일어난다. 즉, 새로운 행위자가 등장하거나 기존 행위자들의 관계가 재편될 때 사회적·과학적 현실도 함께 변화한다.
3) 예시
예를 들어, 스마트폰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사용자), 기술(운영체제), 통신망, 앱, 규제, 심지어 전력공급 등 수많은 행위자가 얽힌 네트워크의 중심에서 사회적 현실을 변화시키는 ‘행위자’다.
4) 정리
행위자-연결망 이론은 인간과 비인간 모두를 동등한 행위자로 보고, 이들이 만들어내는 네트워크를 통해 사회와 현실을 해석하는 혁신적 이론이다. 이로써 라투르는 과학, 기술, 사회, 자연의 경계를 넘어선 새로운 분석틀을 제시했다
3. 과학인류학 – 근대성의 철학 – 정치생태학 – 결합의 사회학
1) 과학인류학: 실험실에서의 지식 생산
브뤼노 라투르의 과학인류학은 과학 지식이 실험실 내부의 사회적·기술적 상호작용을 통해 구성된다는 관점을 제시한다. 그의 초기 저작 『실험실 생활』(1979)은 실험실을 현장 조사 대상으로 삼아, 과학적 사실이 연구자, 장비, 문서, 미생물 등 다양한 행위자들의 네트워크 속에서 ‘제조’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미생물의 존재는 현미경 관찰, 논문 작성, 학계의 논쟁을 거쳐 ‘사실’로 정립된다. 이는 과학을 객관적 진리의 탐구가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이 협업하는 ‘실천’으로 재정의한다.
2) 근대성의 철학: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1993)에서 라투르는 근대성의 이분법(자연/사회, 주체/객체)을 비판한다. 17세기 로버트 보일(과학)과 토머스 홉스(정치)가 구축한 ‘근대 헌법’은 자연과 사회를 분리해 설명하지만, 실제로는 오존층 파괴, 유전자 변형 작물 같은 ‘하이브리드’가 넘쳐난다. 라투르는 “근대인은 자연과 사회를 분리한다고 주장하지만, 오히려 그들을 혼합하는 기술을 발전시켰다”고 지적하며, 근대성의 모순을 해체한다.
3) 정치생태학: 비인간을 포함한 민주주의
라투르의 정치생태학은 인간과 비인간(동물, 기후, 기술 등)을 동등한 정치적 행위자로 인정하는 ‘코스모폴리틱스’를 제안한다. 『자연의 정치학』(2004)에서 그는 “환경 문제는 자연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이 공존하는 새로운 정치적 집합체를 설계하는 것”이라 강조한다. 예를 들어, 기후위기는 인간의 탄소 배출뿐 아니라 해양 생태계, 태양 복사 등 무수한 행위자의 상호작용 결과로, 이들의 ‘목소리’를 정치 과정에 반영해야 한다.
4) 결합의 사회학: 사회를 재조립하다
『사회적인 것의 재조립』(2005)에서 라투르는 전통적 사회학이 ‘사회’를 설명의 배경으로 삼는 것을 비판한다. 대신 ‘결합의 사회학’은 인간과 비인간의 연결망이 어떻게 사회를 구성하는지 추적한다. 예를 들어, SNS 플랫폼은 알고리즘, 사용자, 정부 규제, 데이터 센터가 결합해 새로운 사회적 현실을 만든다. 여기서 사회는 고정된 구조가 아니라, 행위자들의 지속적인 ‘연결’과 ‘재조립’ 과정이다.
5) 정리
과학인류학: 과학 지식은 실험실의 네트워크에서 제조된다.
근대성의 철학: 자연/사회 이분법은 허구이며, 하이브리드가 현실이다.
정치생태학: 인간과 비인간이 공동의 정치적 주체로 참여해야 한다.
결합의 사회학: 사회는 행위자들의 역동적 연결망으로 재구성된다.
라투르의 사유는 학문적 경계를 넘어, 과학·정치·사회를 ‘행위자-연결망’이라는 단일 프레임워크로 통합한다
4. 사실은 제조되는 것
브뤼노 라투르는 “사실은 제조된다”는 명제로 과학적 사실의 본질을 근본적으로 재해석한다. 그는 자연이 객관적이고 이미 주어진 실체라는 전통적 인식론을 비판하며, 과학적 사실이란 실험실에서 다양한 행위자(인간, 기계, 문서, 미생물 등)의 상호작용과 복잡한 관계 속에서 ‘구성’되고 ‘제조’된다고 주장한다.
라투르의 대표 저서 『실험실 생활』에서 그는 과학자들이 실험실에서 데이터를 수집하고, 기입(inscription) 행위를 통해 결과를 기록하며, 동료들과 논쟁하고, 장비와 기술을 조작하는 모든 과정이 과학적 사실의 생산에 기여한다고 분석했다. 즉, 과학적 사실은 단순히 자연의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행위자들이 협업하고 번역하며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실천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과학이 사회적·물질적 맥락과 분리된 순수한 진리 탐구라는 근대적 신화를 해체한다. 라투르는 과학적 사실이란 “실험실과 사회적 현장, 인간과 비인간 행위자들이 얽힌 네트워크 안에서, 다양한 협상과 번역, 기입의 과정을 거쳐 더는 반증되지 않는 진술로 자리 잡은 것”이라고 본다.
예를 들어, 파스퇴르의 미생물 이론이나 백신 개발 역시 위대한 개인의 발견이 아니라, 실험실의 도구, 미생물, 논문, 정책 등 수많은 행위자가 연결망을 이루며 사실을 ‘제조’한 결과라는 것이다.
이처럼 라투르의 “사실은 제조된다”는 통찰은 과학과 사회,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허물고, 지식의 생산과 유통을 역동적이고 다층적인 네트워크의 산물로 이해하게 한다. 이는 과학기술학(STS)과 현대 사회이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혁신적 관점이다.
5. 프랑스의 파시퇴르화
‘프랑스의 파시퇴르화’는 브뤼노 라투르가 1988년 출간한 저서에서 제시한 개념으로, 루이 파스퇴르의 미생물학적 발견과 실험실의 논리가 어떻게 프랑스 사회 전체로 확장되고 일상에 뿌리내렸는가를 분석한다.
라투르는 파스퇴르의 과학적 성취(세균 발견, 백신 개발 등)가 단순히 실험실 안에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인간과 비인간 행위자(과학자, 농민, 가축, 병원균, 실험기구, 행정가 등)가 네트워크를 이루며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예를 들어, 파스퇴르는 탄저병 백신 개발을 위해 실험실에서 축산업 현장으로, 다시 프랑스 전역의 농촌과 도시로 자신의 실험과 기술을 ‘번역’해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축산업자, 수의사, 행정가 등 다양한 집단을 설득하고, 실험실의 규칙과 기술을 사회 전체에 적용하도록 유도했다.
즉, ‘파시퇴르화’란 파스퇴르의 실험실이 프랑스 사회 전체로 확장되어, 실험실의 방식과 미생물학적 사고가 일상과 사회, 국가 정책에까지 깊이 스며드는 과정을 뜻한다. 라투르는 이 과정을 통해 과학지식이 사회에 뿌리내리는 데에는 인간과 비인간 행위자들이 얽힌 복잡한 네트워크와 협상, 번역, 설득의 과정이 필수적임을 강조한다.
이처럼 ‘프랑스의 파시퇴르화’는 과학기술이 사회 전반에 뿌리내리는 과정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자, 라투르 행위자-연결망 이론의 실천적 분석이기도 하다.
6. 정치생태학: 자연의 의회: 인간과 비인간의 비근대적인 집합체
브뤼노 라투르의 정치생태학은 근대적 인간중심주의를 넘어, 인간과 비인간(동물, 식물, 미생물, 기후, 기술 등)이 함께 정치적 행위자로 참여하는 새로운 집합체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그는 『자연의 정치학』, 『자연의 의회』 등에서 “자연”과 “사회”의 이분법을 해체하고, 모든 존재자가 동등하게 정치의 장에 참여하는 ‘비근대적 집합체’를 주장한다.
1) 자연의 의회란 무엇인가?
라투르가 제안하는 ‘자연의 의회’(Parliament of Things)는 전통적 의회처럼 인간만이 대표를 뽑아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비인간 행위자들—예컨대 강, 숲, 동물, 바이러스, 기후 시스템 등—도 정치적 논의와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이다. 여기서 비인간의 ‘대표’는 과학자, 활동가, 시민 등 다양한 인간 행위자가 맡을 수 있다.
2) 비근대적 집합체의 특징
이분법 해체: 자연/사회, 인간/비인간, 주체/객체의 근대적 구분을 넘어서, 모든 존재자가 동등하게 연루된 집합체를 상정한다.
행위자-연결망: 인간과 비인간 모두가 정치적 행위자로서 네트워크를 구성하며, 이 네트워크 안에서 정책과 의사결정이 이루어진다.
정치의 확장: 환경, 기후, 기술 등 전통적으로 ‘비정치적’이라 여겨진 영역까지 정치의 범주에 포함시킨다.
3) 실천적 예시
예를 들어, 기후 위기 논의에서 ‘자연의 의회’는 탄소배출, 해양생태계, 대기 중 미세먼지, 멸종위기종 등 비인간 행위자들의 이해관계를 대표하는 목소리가 공식적으로 논의에 반영되는 구조를 상상한다. 이는 기후협약, 환경정책, 도시계획 등에서 인간과 비인간의 복합적 이해관계를 동등하게 고려하는 정치적 실천으로 이어진다.
4) 의의
라투르의 정치생태학은 인간만의 정치에서 벗어나, 지구적 차원의 ‘공존’과 ‘연결’을 정치의 핵심으로 삼는다. 이는 환경위기 시대에 기존 정치의 한계를 넘어설 새로운 집합적 상상력과 실천의 틀을 제공한다.
정리하면, ‘자연의 의회’는 인간과 비인간이 함께 참여하는 비근대적 집합체를 지향하며, 생태위기와 정치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하는 라투르 정치생태학의 핵심 개념이다.
7. 생산시스템과 생성시스템
브뤼노 라투르는 현대 문명의 위기를 ‘생산 시스템’과 ‘생성 시스템’의 대립으로 설명한다. 이 두 개념은 인간과 자연, 사회와 생태의 관계를 바라보는 근본적 시각 차이를 드러낸다.
1) 생산시스템(system of production)
인간이 자연을 ‘자원’으로 바라보고, 이를 추출·가공·소비하는 인간중심적 관점이다. 사회와 경제의 발전을 위해 자연을 분리·축소·도구화하며, 생산의 효율성과 성장, 이윤 극대화에만 집중한다. 이 시스템은 결국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파괴적·착취적으로 만들고, 현재의 기후위기와 생태파국을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2) 생성시스템(system of engendering)
인간과 비인간, 다양한 행위자들이 서로 얽혀 ‘함께 거주하고 생성하는’ 관계망을 중시한다. 이원론(인간/자연, 생산/소비)에서 벗어나, 생명체와 환경, 기술, 대지 등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강조한다.
생성시스템은 “거주 가능성”을 돌보고, 다양한 존재자들이 함께 살아갈 조건을 유지하는 방식에 방점을 둔다. 생산의 열매 분배가 아니라, ‘거주와 생성의 실제’를 돌보는 것이 핵심이다.
3) 녹색계급과의 연관
라투르는 생산시스템에 맞서, ‘녹색계급’이 등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생산의 논리(성장, 착취, 자원화)를 넘어, 지구적 거주 가능성과 생태적 생성의 조건을 지키는 역할을 맡는다.
“나는 의존한다. 이것이 나를 해방하는 것이다”라는 가치 전환을 통해, 인간이 자연과의 상호의존성을 인정하고 새로운 실천을 모색해야 한다고 본다.
4) 정리
생산시스템: 인간중심, 자연을 자원화, 성장·효율성·착취, 생태위기 초래
생성시스템: 인간과 비인간의 상호작용, 거주 가능성, 생명과 환경의 공존, 새로운 실천
라투르는 이 전환을 통해, 기후위기 시대의 생태정치와 사회적 상상력의 근본적 변화를 촉구한다
8. 거주가능성과 녹색계급
브뤼노 라투르는 현대 생태위기의 핵심을 “생산의 확대”가 아니라 “거주 가능한 지구 환경의 유지”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인류의 미래는 더 많이 생산하고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 지구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조건—곧 ‘거주가능성’—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에 달려 있다.
1) 거주가능성의 의미
라투르가 말하는 거주가능성은 단순히 인간이 살아남는 문제를 넘어, 인간과 비인간, 자연과 사회가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을 뜻한다. 그는 근대의 발전주의, 성장 중심적 사고가 오히려 지구의 거주가능성을 파괴해 왔다고 진단한다. 이제는 성장과 효율성, 생산의 논리가 아니라, 지구라는 장소에서 다양한 존재자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돌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2) 녹색계급의 출현
이러한 전환의 중심에는 ‘녹색계급’(Green Class)이 있다. 라투르는 최근 저서에서, 자유주의나 사회주의가 아닌, 기후·에너지·생물다양성 위기 시대에 맞는 새로운 정치적 주체로서 녹색계급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녹색계급은 기존의 생산·재생산 중심의 계급과 달리, 지구를 자원으로만 취급하지 않고, ‘거주 가능한 조건’ 자체를 지키고 돌보는 데 집중한다.
이들은 경제적 이익이나 성장만이 아니라, 지구생활자 모두의 생존과 공존, 그리고 생태적 정의를 위한 정치적 투쟁의 주체가 된다.
녹색계급은 “생성(감싸기)”의 논리를 따르며, 생산의 확대가 아니라 거주와 생성의 실제를 돌보는 방식으로 사회적·정치적 변화를 추구한다.
3) 정치적·실천적 전환
라투르는 거주가능성을 지키는 일이 단순히 환경운동이나 기술적 대안에 머무르지 않는다고 본다. 오히려 사회 전체가 근대적 생산 체계와 발전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 다양한 존재자들이 공존할 수 있는 생태적 문명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는 “국가 경계가 흐려지고 다양한 요소들이 뒤섞인 통합된 유럽” 등에서 실험될 수 있는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이다.
녹색계급은 갈등과 분산, 다양한 방식의 실천을 통해, 모두가 함께 거주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가는 혁신적이고 급진적인 주체다.
4) 정리
거주가능성: 생산과 성장의 논리 대신, 지구에서 다양한 존재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돌보는 것.
녹색계급: 이 거주가능성을 지키기 위해 등장하는 새로운 정치적 주체이자, 생태적 전환의 동력.
라투르의 메시지: “더 많이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더 잘 거주하는 것”이 인류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근본적 전환의 요청이다.
9. 브뤼노 라투르를 곁에 두고
나는 더 이상 ‘글을 쓴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살고 있다’고 말하고 싶어진다. 글은 내가 앉은 자리에서, 내가 마신 차의 향기에서, 내가 스친 바람과 내가 만난 문장들 속에서 조용히 솟는다. 브뤼노 라투르의 철학은 이 감각을 나에게 언어로 묶어주는 사람이다. 그는 말했다. 진실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우리는 진리를 발굴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하고 연결하는 존재들이라고.
라투르의 세계에는 위계가 없다. 인간만이 중심이 아니다. 식물, 돌, 미생물, 기술, 도시, 데이터, 감정조차도 모두 하나의 ‘행위자’로서 존재한다. 우리는 고립된 주체가 아니라, 매 순간 다양한 존재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연결망 속의 일부다. 그 관계들은 끊임없이 재구성되고, 세계는 그 안에서 계속 다시 만들어진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문장은 내가 단독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수많은 비인간 행위자들과 함께 공모해 만들어가는 작은 세계다.
그러므로 나는 글을 쓸 때마다 묻는다. 오늘 나의 문장은 누구와 함께 쓰였는가. 지금 이 사유는 어떤 기후와 감각과 소리와 장치들 사이에서 피어난 것인가. 나의 언어는 어떤 연결 속에서 도착했으며, 누구의 침묵 위에 얹혀 있는가. 라투르는 그것이 바로 우리가 세계에 ‘거주하는 방식’이라고 말한다.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빠르게 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잘 거주하며 쓰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라투르가 제안한 개념 중 하나인 ‘자연의 의회’는 나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그것은 인간만이 발언권을 가지는 정치가 아니라, 강과 바람과 토양과 바이러스와 동물, 그리고 말해지지 못한 존재들까지도 참여할 수 있는 공적인 공간을 의미한다. 나는 나의 글쓰기가 그런 의회 중 하나가 되기를 바란다. 말할 수 없는 것들, 구조 속에서 배제된 감각과 존재들이 조용히 숨 쉴 수 있는 공간. 침묵조차 목소리로 인정받을 수 있는 그런 자리 말이다.
글을 쓰며 살아가는 일상은 매일의 선택과 감각의 반복 속에서 이 세계와 맺는 작고도 구체적인 맹세다. 나는 그 맹세를 절대적인 진리나 완성된 언어로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실패하고, 계속 망설이며, 계속 다시 말하는 방식으로 한다. 나의 문장은 결코 완결되지 않으며, 언제나 미완의 몸짓으로 남는다. 라투르가 말하는 ‘생성 시스템’처럼, 나는 내 글이 무언가를 ‘만들기’보다는 어떤 가능성 안에 ‘함께 머무는’ 형식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나는 더 잘 거주하기 위해 글을 쓴다. 글쓰기는 나에게 존재의 증명이 아니라, 생성의 실천이며, 연결의 윤리이며,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한 사적인 다짐이다. 나는 이 문장 안에, 인간과 비인간이 함께 얽힌 오늘의 일상과 미세한 감정들을 불러들이고자 한다. 그러니 글을 쓴다는 것은 결국 세계를 구성하는 하나의 방식이며, 거주 가능성을 돌보는 하나의 실천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나의 마지막 이유다. 나는 이 세계와 조금 더 잘 연결되기 위해, 조금 더 부드럽게 거주하기 위해, 그리고 나와 함께 이 글을 읽을 어떤 존재의 숨결을 느끼기 위해 오늘도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한 문장을 남긴다.
“글쓰기는 나의 거주이고, 거주는 나의 저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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