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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룸 넥스트 도어』, 색채와 서사의 교차점에서 죽음과 존엄을 묻다

thetraveleroftheuniverse 2025. 2. 28. 09:49

 

 

 

영화 룸 넥스트 도어, 색채와 서사의 교차점에서 죽음과 존엄을 묻다

 

  페드로 알모도바르(Pedro Almodóvar)의 영화와의 첫 조우는 2004년 영화 나쁜 교육(La mala educación, 2004)이었다. 흔히 이 영화는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어둡고 개인적인 작품 중 하나로, (), 기억, 권력, 그리고 영화 자체의 속성을 탐구하는 복잡한 네오누아르 드라마라고 일컬어진다. 내가 이 영화에서 주목했던 점은 특유의 강렬한 색감과 대담한 미장센, 사회적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었던 용감함이었고 그 후 그의 팬이 되어, 멜로드라마적 감성과 여성 캐릭터들의 강한 서사가 돋보였던 영화 내 어머니의 모든 것(1999), 특히 음악이 아름다웠던 영화 그녀에게(2002), 페넬로페 크루즈의 강렬한 연기가 눈에 들어왔던 영화 귀향(2006) 같은 작품들에서 여성 중심 서사를 통해 모성, 욕망, 희생, 그리고 운명이라는 주제와 캐릭터들의 복합적인 인간성을 구현한 감독의 역량에 감탄했다.

 

  감히 한마디로 그의 영화적 성격을 표현한다면 아마 색채로 그려낸 욕망과 기억의 멜로드라마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여하튼 그의 영화를 감상할 때마다 나는 저런 그림 속에서, 저런 음악 속에서, 풍경 속에서 살고 싶을 만큼. 특히 나에게 가장 크게 다가왔던 것은 색채 감각이었다. 뭐랄까, 원색을 쓰면서도 어쩌면 저렇게 우아할까, 강렬하면서도 조화롭고, 대담하면서도 세련된 그 색채들은 단순한 미장센을 넘어 감정 자체가 되어 화면을 채웠다. 마치 인물들의 욕망과 상처, 희망과 절망이 색으로 발화하는 듯한 느낌이랄까. 붉은색은 사랑과 분노, 열정을 담고, 푸른빛은 쓸쓸함과 그리움을 품으며, 노란빛은 억눌린 기억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처럼 보인다. 그 색감 속에서 인물들은 숨 쉬고, 나는 그들의 감정에 빨려 들어간다.

 

 

 

  역시 오늘의 영화,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최신작인 룸 넥스트 도어(2024)에서도 특유의 색채 감각을 발휘하여, 감정의 깊이를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두 주인공인 마사와 잉그리드의 패션, 주변의 꽃과 과일, 미술품 등 모든 요소가 세련된 색감으로 조화를 이루었던 영화를 감상하며, 또 한 번의 알모도바르의 진가를 누리는 호사를 했다.

  영화 룸 넥스트 도어는 그의 첫 영어 연출 작품으로, 삶과 죽음, 우정과 존엄사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시그리드 누네즈의 소설 어떻게 지내요를 원작으로 하며, 베스트셀러 작가 잉그리드와 종군 기자 마사의 재회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마사는 암 투병 중에 있으며, 잉그리드에게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해 줄 것을 부탁하는데, 이들의 깊은 우정과 감정의 교류를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담아내고 있다.

 

  나에게 특히 다가왔던 영화의 서사적 플롯은 안락사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감독의 메시지였다. 알모도바르는 안락사라는 민감한 주제를 통해 인간 존재의 마지막 순간에 대해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진 점이다. 영화의 두 주인공, 마사와 잉그리드의 관계는 단순한 재회의 이야기가 아니라,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에서의 존엄성과 선택을 둘러싼 고뇌를 그린다. 마사는 자신이 겪고 있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 더 이상 삶을 이어갈 의미를 찾을 수 없다고 느끼며, 자비로운 죽음을 선택하고자 한다. 이 선택을 받아들이는 잉그리드는 그동안의 우정과 사랑을 되새기며, 마사의 마지막을 함께하기로 결심한다.

 

  알모도바르는 이를 통해 관객에게 안락사에 대한 도덕적, 윤리적 성찰을 요구한다. 단순히 죽음을 선택하는 행위를 넘어서, 삶의 마지막 순간에 대한 인간의 권리와 그 선택의 의미를 성찰하도록 이끈다. 마사와 잉그리드의 감정선은 이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며, 그들의 관계는 영화 내내 미묘하게 변화한다. 잉그리드는 마사의 요청을 단순히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선택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그 순간을 맞이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알모도바르는 우리가 삶과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죽음을 둘러싼 복잡한 감정들을 섬세하게 풀어낸다.

 

 영화 속 주제 중 하나인 안락사 문제는 철학적으로 생명의 가치, 자율성, 인간의 존엄성, 고통과 죽음의 의미에 대한 논의로 이어진다. 철학자들은 각자의 윤리적 체계를 통해 안락사의 허용 여부를 판단했으며, 그들의 입장은 크게 자율성과 자기결정권을 강조하는 입장과 생명의 신성함과 인간 존엄성을 근거로 반대하는 입장으로 나눌 수 있다.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은 자유주의적 자율성과 안락사를 강조하였다. 밀은 자유론(On Liberty)에서 개인의 자율성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보았다. 그의 해악 원칙’(harm principle)에 따르면, 개인의 선택이 타인에게 직접적이고 중대한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국가나 사회는 개인의 결정을 간섭해서는 안 된다. 이를 안락사 문제에 적용하면, 밀의 사상은 자율적 안락사의 정당화를 주장한다. 만약 한 개인이 극심한 고통 속에서 더 이상 삶을 지속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통해 죽음을 선택한다면, 이는 그의 자율적인 결정이며 존중받아야 한다. 국가나 사회는 이를 강제로 막을 권리가 없다. 그러나 비자발적 안락사는 밀의 이론에서 강제적 안락사나 비자발적 안락사는 정당화되기 어렵다. 왜냐하면 이는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밀의 사상은 현대 자유주의적 안락사 옹호론의 근간을 이루며, 안락사를 합법화하는 논거로 자주 인용된다.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의 윤리학은 의무론적 관점에서 안락사를 반대하는 강력한 논거를 제공한다. 칸트는 윤리형이상학(Groundwork of the Metaphysics of Morals)에서 인간은 자기 자신을 포함하여 그 어떤 경우에도 단순한 수단(means)으로 다뤄져서는 안 되며, 스스로를 목적으로 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살이나 안락사는 인간을 하나의 목적이 아니라,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만드는 행위이므로, 도덕적으로 용납될 수 없다. 칸트는 인간이 자신의 고통을 이유로 삶을 포기하는 것은 의무 윤리에 어긋난다고 보았다. 인간의 생명은 스스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 법칙에 따라 유지되어야 하는 가치이다. 칸트의 입장은 오늘날 생명윤리학에서 안락사를 반대하는 강한 철학적 근거로 작용하며, 특히 종교적·보수적 입장에서 그의 논리를 차용하는 경우가 많다.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는 기존의 도덕 체계를 전복하며 새로운 가치관을 주장한 철학자로, 그의 철학에서 안락사 문제를 해석할 수 있는 중요한 개념이 존재한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자발적 죽음을 언급하며, 인간이 존엄성을 지키면서 스스로 삶을 마무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니체가 인간의 죽음을 단순한 소멸이 아니라 의지의 표현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고통이 반드시 피해야 할 것은 아니라고 보았으며, 고통 속에서 인간은 성장할 수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삶의 의미가 완전히 사라졌다면, 죽음 역시 하나의 선택이 될 수 있다고 암시한다. 니체의 사상은 현대 안락사 논의에서 직접적으로 원용되지는 않지만, 강한 개인주의적 시각과 죽음을 하나의 능동적 선택으로 보는 관점에서 철학적 영감을 제공한다.

 

  알베르 카뮈(Albert Camus)시지프의 신화(The Myth of Sisyphus)에서 자살을 유일한 철학적 문제라고 할 만큼 삶과 죽음의 문제를 본질적인 철학적 질문으로 다뤘다. 카뮈는 인간 존재가 본질적으로 부조리하다고 보았으며, 그 부조리를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것이 철학적 결단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안락사 문제에 적용하면, 인간이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삶을 지속해야 하는가, 아니면 그 부조리를 거부하고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카뮈는 자살을 반대하지만, 이는 도덕적 이유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 부조리를 견디고 살아가야 한다는 그의 철학적 결단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의 논의는 안락사 반대론보다는, 인간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자유를 가질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는 데 가깝다.

 

  한스 요나스(Hans Jonas)책임의 원칙(Das Prinzip Verantwortung)에서 생명 윤리의 관점에서 인간 존재의 지속 가능성을 강조했으며, 이는 안락사 문제와도 연결된다. 요나스는 기술 발전으로 인간 생명의 운명이 인간의 손에 맡겨진 시대에서, 우리는 생명을 보호할 의무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안락사를 반대하는 강력한 생명윤리적 논거가 된다. 요나스는 인간 생명을 하나의 신성한 가치로 보고, 그것이 쉽게 도구화될 경우 윤리적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는 안락사의 윤리적 허용을 경계하는 입장과 연결된다.

 

  피터 싱어(Peter Singer)는 현대 철학자 중 안락사를 가장 강하게 옹호하는 인물 중 하나로, 실천윤리학(Practical Ethics)에서 다음과 같은 논지를 펼쳤다. 싱어는 인간의 삶의 가치는 단순히 살아 있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질에 달려 있다고 보았다. 만약 삶의 질이 극도로 낮아지고 고통만 남아 있다면, 생명을 유지하는 것은 비윤리적일 수도 있다. 싱어는 자발적 안락사뿐만 아니라, 심각한 고통 속에서 의식이 없는 환자에 대한 비자발적 안락사도 윤리적으로 고려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전통적 윤리학과 큰 충돌을 일으키는 논점이다. 안락사 문제는 철학사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자율성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자유주의적 입장(, 싱어)은 안락사를 긍정적으로 보지만, 의무론적 윤리(칸트)나 생명윤리적 입장(요나스)은 이를 강하게 반대한다. 니체나 카뮈처럼 안락사를 도덕적 문제가 아닌 개인의 결단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이러한 논의는 오늘날 안락사의 법적·윤리적 논쟁에도 깊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룸 넥스트 도어(2024)는 인간 존재의 마지막 순간을 다루면서, 안락사와 죽음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제기한 영화로, 감독은 영화 속 인물들의 관계를 통해 죽음의 존엄성과 선택을 탐구하며, 이는 관객에게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을 요구한다. 알모도바르는 이 영화를 통해 우리가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수 있을지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지며, 이는 결국 인간의 자유 의지와 선택을 존중하는 윤리적 입장을 반영한다.

 

  영화 속 마사의 죽음 선택은 단순한 고통의 회피가 아니라, 존엄을 지키는 행위로 그려지며, 이로써 인간의 자율성과 죽음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이는 철학적으로 안락사에 대한 논의와 맞닿아 있다.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율성 강조와, 임마누엘 칸트의 생명 존중 윤리, 프리드리히 니체의 자발적 죽음에 대한 언급 등 다양한 철학적 입장에서 안락사 문제를 탐구할 수 있다.

 

  알모도바르의 영화는 이러한 철학적 질문들을 섬세하게 풀어내며, 관객이 그와 같은 고민을 함께 나누도록 유도한다. 이 영화에서 죽음은 단지 끝이 아니라, 인생의 자연스러운 한 부분으로서 받아들여지는 과정을 그려낸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는, 그것을 하나의 과정으로 인정하고, 삶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된다. 이는 단순히 영화적 상상력의 결과가 아니라, 인간 존재와 윤리에 대한 깊은 성찰을 촉발하는 중요한 메시지겠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 또한 나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까지 나는 나의 마지막 풍경을 다음과 같이 그렸다. 넓은 운동장에 아이들이 뛰노는 소음과 함께 바흐의 무반주 첼로곡이 무한 이어지고 안락 의자에 앉은 내 무릎 위엔 빨간색 체크무늬 담요가 있는 풍경 속에서 이승의 소풍을 마감해야겠다는, 다소 감성적인 멜로 드라마의 한 장면을 꿈꾸었다.

 

  그런데 영화 룸 넥스트 도어를 감상한 후 나는 다른 풍경을 꿈꾸기 시작했다. 영화 속 주인공 마사처럼 용감하게 자신의 죽음을 선택할 수 있기를, 그리고 그 곁에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나의 연인이 혼잣말하듯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뒷 배경으로는 소나무 숲이 있는 벽돌집이 있고, 앞쪽으로는 서해 바다가 찰싹거리는 풍경이 있는 그런 장면을 상상하게 된다. 나는 여전히 감성적인 상상을 놓지 못한 채, 죽음조차도 나에게는 하나의 서정적인 풍경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다니, 웃지 않을 수 없다.

 

  이렇듯 영화 속 마사의 모습은 내게 새로운 인식을 안겨주었다. 그녀의 죽음은 단순히 고통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존엄을 지키고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스스로의 선택을 존중하는 행위였다. 그렇게 나의 죽음에 대한 상상도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이제 나는 단지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온전히 나의 삶을 살아왔다는 확신을 가지고, 고통이 없는 선택을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기를 원한다. 그 순간에도 여전히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가 들리고, 소나무 숲과 서해 바다가 함께 어우러지는 풍경이 나를 둘러싸고 있지만, 그 속에서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는, 그것이 나의 삶의 자연스러운 부분임을 받아들이며, 평온하게 마주할 수 있기를 꿈꾼다면 다분히 이 영화 때문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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