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37] <작은 편위가 만드는 거대한 변화: 맑스와 클리나멘을 통해 본 자유와 혁명>
[200-137] <작은 편위가 만드는 거대한 변화: 맑스와 클리나멘을 통해 본 자유와 혁명>
[원 문장] 『처음 읽는 독일 현대 철학』 중 노동의 존재론과 칼 맑스의 혁명 사상, 조정환 씀
“루크레티우스는 중력이나 관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 원자의 힘을 ‘클리나멘’이라고 부릅고 이 비결정성, 즉 이탈과 탈주의 힘이야말로 세상의 살아 있는 것들이 갖는 자유의지 그 자체라고 보았습니다. 맑스는 이 클리나멘의 개념을 통해 인간의 자유의지의 물질적 토대를 규명하려고 하면서 물질운동에서의 우연과 윤리적 운동에서의 자유의 연관관계를 탐구했습니다.”
나의 문장)
1. 루크레티우스와 클리나멘의 개념
먼저, 루크레티우스는 기원전 1세기경 활동한 로마의 철학자이자 시인이다. 그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에피쿠로스의 사상을 계승하여 우주의 원리를 설명하는 데 집중했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인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De Rerum Natura)에서 그는 클리나멘(편위, clinamen)이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클리나멘이란 원자가 일정한 방향으로 곧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아주 미세하게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이탈하는 현상을 뜻한다. 당시 원자론에 따르면, 원자는 단순히 직선 운동이나 충돌을 통해만 움직일 수 있다고 보았는데, 루크레티우스는 이 클리나멘이 원자의 비결정성을 만들어내며, 이로 인해 새로운 것들이 생겨날 수 있다고 보았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탈과 탈주의 힘이다. 클리나멘은 단순한 물리적 현상이 아니라, 정해진 법칙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힘이며, 이를 통해 자유의지의 가능성을 설명할 수 있다고 보았다. 만약 원자가 철저하게 기계적인 방식으로만 움직인다면, 세상 모든 것은 필연적으로 결정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원자가 스스로 약간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면, 이는 생명체가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준다. 따라서 루크레티우스는 클리나멘을 세상의 살아 있는 것들이 자유의지를 가질 수 있는 근본적인 힘이라고 해석했다.
2. 맑스는 클리나멘을 어떻게 이해했을까?
맑스는 철학자로서 물질과 운동의 관계를 깊이 탐구했다. 그는 물질이 단순한 기계적 법칙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우연적인 요소와 자유로운 변화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보았다.
위 문장에서 “맑스는 클리나멘의 개념을 통해 인간의 자유의지의 물질적 토대를 규명하려고 했다”고 하는데, 이는 맑스가 인간의 의식과 행동을 물질과 연결 지으려 했다는 뜻이다. 즉, 자유의지가 단순히 정신적인 것이 아니라, 물질 자체의 운동 속에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설명하고자 했다. 만약 물질 세계가 완전히 결정론적이라면,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도 결국 정해진 필연적 결과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클리나멘처럼 물질이 작은 이탈을 일으킬 수 있다면, 인간의 사고와 행동 역시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변화의 가능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3. 물질운동에서의 우연과 윤리적 운동에서의 자유
여기서 중요한 개념이 바로 "물질운동에서의 우연과 윤리적 운동에서의 자유의 연관관계"이다.
물질운동에서의 우연: 원자가 단순히 기계적 법칙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클리나멘을 통해 예측할 수 없는 변화를 일으킨다. 윤리적 운동에서의 자유: 인간의 행동과 도덕적 선택도 단순히 주어진 조건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낼 수 있다. 맑스는 이러한 개념을 확장하여 사회 변화의 가능성을 설명하려 했다. 만약 사회가 완전히 결정된 법칙에 의해 움직인다면, 인간은 단순히 환경에 의해 조종되는 존재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클리나멘처럼 예측할 수 없는 작은 변화가 발생할 수 있다면, 노동자 계급의 저항과 혁명 역시 필연적인 법칙이 아니라 능동적인 자유의지의 결과로 볼 수 있다.
4. 맑스 사상과 클리나멘의 연결
맑스는 클리나멘 개념을 단순한 물리학적 개념이 아니라, 사회 변화의 가능성을 설명하는 철학적 토대로 활용했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가 불평등한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이 완전히 결정된 운명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능동적으로 행동하면 변화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는 노동자의 저항과 혁명 역시 클리나멘처럼 기존 질서에서 벗어나는 하나의 편위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즉, 맑스는 물질 세계에서의 우연성을 인정함으로써, 인간의 자유의지와 사회 변혁의 가능성을 철학적으로 정당화하려 했다고 볼 수 있다.
5. 정리
루크레티우스는 원자의 비결정적인 움직임(클리나멘)을 통해 자유의지의 가능성을 설명했다.
맑스는 이 개념을 통해 인간의 자유의지가 물질적 세계와 연결되어 있음을 탐구했다. 물질운동에서의 우연(클리나멘)과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윤리적 운동)은 연관되어 있다. 맑스는 이 개념을 사회 변화에 적용하여, 혁명과 저항의 가능성을 철학적으로 설명했다. 결국, 사회는 단순한 결정론적 법칙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예측할 수 없는 변화(노동자의 행동과 혁명)로 인해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처럼 맑스는 단순히 경제학적 분석을 한 것이 아니라, 철학적으로도 인간과 사회의 변화를 탐구했으며, 이를 통해 사회 변혁이 가능하다는 이론적 근거를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맑스의 사상을 따라가며, 나는 한 폭의 강물 위를 떠다니는 낙엽이 된 기분이다. 세상은 거대한 흐름처럼 보였고, 나는 그저 물살에 몸을 맡기는 작은 조각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클리나멘, 그 미세한 편위의 개념이 내 시선을 붙든다. 원자는 곧게 흘러가지 않는다. 어느 순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름을 틀며, 기존의 질서를 비틀고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낸다.
맑스가 이 사소한 일탈에서 자유의지를 발견했듯, 나도 질문하게 된다. 변화는 거대한 파도에서만 오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아주 작은 편위, 미세한 어긋남, 틀어진 궤도가 모이면 언젠가 거대한 전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혁명은 머나먼 이상이 아니라, 일상의 작은 균열 속에서 태어나는 것은 아닐까?
맑스는 단순한 경제학자가 아니다. 그는 세상이 단단하게 굳어 있는 것이 아니라, 변화의 여지가 스며든 유기체임을 꿰뚫어 보았다. 혁명이란, 피로 쓰인 거친 구호가 아니라, 스스로 빚어내는 흐름의 전환일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까지 삶을 너무 고요한 강물처럼 바라보았던 것은 아닐까? 어쩌면 나의 사유, 나의 행동, 나의 선택이 한 조각의 클리나멘이 되어 새로운 흐름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맑스를 읽으며, 나는 사상의 굳은 틀을 비틀어 본다. 세상을 결정된 법칙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틈새에서 흔들리는 가능성을 발견한다. 변화란 거대한 것이 아니라, 작은 편위의 축적일지도 모른다. 나도 언젠가 나만의 작은 편위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렇다면, 나는 어디로 흘러가야 할까? (끝)
2024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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