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Harry "Sweets" Edison and Lester Young의 앨범 - Going for Myself(1957년)

thetraveleroftheuniverse 2018. 3. 21. 22:21






Lester Young
Harry "Sweets" Edison





카운트 베이시의 오케스트라의 멤버였던 레스터 영(1909년 8월 27일 - 1959년 3월 15일)은 테너 색소폰 연주자로서 가장 뛰어난 실력을 발휘한 영향력 있는 음악가였다. 동시대의 연주자들의 딱딱한 음색과 달리 영의 음색은 편안하고 쿨 했으며 미묘한 하모니를 사용해서 마치 사람들을 기쁘게 춤추게 하는 낮고 펑키한 반복 악절을 쌓아올리며 자유롭게 떠다니는 스타일, 마치 갈매기가 다이빙을 하고 하늘을 선회하는 것과 같은 연주 스타일을 지녔다고 한다.

즉 Lester Young은 Coleman Hawkins의 강력한 연주법을 채택하기보다는 부드러운 음색으로 연주하는 완전히 새로운 구상을 안출해 낸 재즈 거인중의 한 사람이다. Young은 일반 사회 규범에 따르지 않는 불순응주의자였으며 당시 Billie Holiday는 그에게 프레즈Pres라는 예명을 지어주었고 1950년대에 수많은 젊은 테너 연주자들이 그를 흉내 내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오늘의 앨범 Going For Myself는 1957년 오스카 피터슨을 동반한 Harry "Sweets" Edison 와 Lester Young의 앨범으로 레스터 영의 마지막 스튜디오 녹음 중 하나이다. 사실 레스터 영의 마지막 해는 쉽지 않았다한다. 그의 재능은 알콜 중독의 영향으로 가파르게 쇠잔했고 건강마저 악화되었다 한다. 이 앨범의 하이라이트는 멋진 발라드의 혼성곡인 타이틀곡과 Perdido라고 알려져 있다.


Harry "Sweets" Edison and Lester Young의 앨범 - Going for Myself(1957년)


레이블: Verve MGV 8298
녹음일: 1957년 7월 31일/1958년 2월 7일 재 이슈된 보너스 트랙들
발매일; 1957년
길이: 42:59 original LP 75:50 CD reissue
스타일: Cool
프로듀서: Norman Granz



Track listing
"Flic" (Oscar Peterson, Lester Young) - 06:16
"Love Is Here to Stay" (George Gershwin, Ira Gershwin) - 05:53
"St. Tropez" (Harry "Sweets" Edison, Peterson, Young) - 10:05
"Waldorf Blues" (Young) - 08:19
"Sunday" (Chester Conn, Benny Krueger, Ned Miller, Jule Styne) - 06:55
"You're Getting to Be a Habit with Me" (Al Dubin, Harry Warren) - 07:43

Bonus tracks; Issued on the 2012 Lone Hill Jazz CD re-issue, LHJ10344

(07) Ballad medley: "A Ghost of a Chance"/"I Cover the Waterfront" (Ned Washington, Ned Young, Bing Crosby)/(Johnny Green, Edward Heyman) - 5:51
(08) "Perdido" (Juan Tizol, Ervin Drake, Hans Lengsfelder) - 6:14
(09) "St. Tropez" - 6:55 - Alternate take
(10) "You're Getting to Be a Habit with Me" - 7:43 - Alternate take
(11) "Waldorf Blues" 6:16 - Alternate take


Personnel
Lester Young - tenor saxophone, clarinet (03 & 09)
Harry "Sweets" Edison - trumpet
(July 31, 1957) (01-03, 07-09)
Oscar Peterson - piano
Herb Ellis - guitar
Ray Brown - double bass
Louie Bellson - drums
(February 07, 1958) (04-06, 10-11)
Lou Stein - piano
Herb Ellis - guitar
Ray Brown - double bass
Mickey Sheen - drums




https://youtu.be/8G-vEJ5NUdQ









1.

Lester Young/Lester Willis Young (1909827- 1959315)은 별명이 "Pres" 또는 "Prez"였던 미국의 재즈 테너 색소포니스트이자 때때로 클라리넷을 연주했던 음악가이다. 카운트 베이시의 오케스트라의 멤버였던 영은 그의 악기로 가장 영향력있는 연주자 중의 하나로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다. 그의 동료들이 딱딱한 연주로 몰아가는 것과 대조해 영은 좀 더 편안한 쿨 음색과 미묘한 하모니를 사용해서 "마치 춤추는 사람들과 듣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 위한 낮고 펑키한 반복 악절을 쌓아 올리며 자유롭게 떠다니는 스타일, 마치 갈매기가 다이빙을 하고 선회하는 것과 같은이라는 비평을 받기도 했다.

 

Lester YoungColeman Hawkins의 강력한 연주법을 채택하기보다는 부드러운 음색으로 연주하는 완전히 새로 운 구상을 안출해 낸 재즈 거인중의 한 사람이다. Young은 일반 사회 규범에 따르지 않는 불순응주의자이며 프레스 PresBillie Holiday가 그에게 붙여준 예명이다. 1950년대에 수많은 젊은 테너 주자들이 그를 따라 흉내를 냈다. 그는 그의 어린 시절을 New Orleans 근처에서 보냈지만 그는 그의 가족 밴드에서 연주하면서 1920년까지 Minneapolis에서 살았다.

 

그는 violin, trumpet, drums 등을 배우고 나서 13살에 알토 색소폰을 불기 시작하였다. 그는 그의 가족 밴드가 남부로 순회공연 하는 것을 거절하고, 1927년 집에 머물러 있었다. 그 대신에 Art Bronson`s Bostonians와 순회공연을 하면서 알토를 테너로 바꾸었다. 1929년에 그는 그의 가족 밴드로 다시 돌아왔다. 그 후 몇 년 동안 자유계약자로 나섰는데 1930Walter Page`s Blue Devils, 1931Eddie Barefield, 1932-1933년 다시 Blue Devils, 1933Bennie MotenKing Oliver 등과 활동하였다.

 

그는 1934년 처음으로 Count Basie와 만났다. Coleman Hawkins가 교체되어 나가고 Fletcher Henderson이 들어왔다. 유감스럽게도 영 이 Hawk와 우열을 겨루어 보지도 못하고 그리고 그의 느긋한 연주가 사이드맨들의 마음에 들지 않아 결국 오래 있지 못 하였다. Andy Kirk와 투어를 하고 난 다음 1936Lester YoungBasie가 동부로 떠날 무렵 때맞추어 다시 그에게 돌아왔다. YoungBasie와 같이 있는 동안 그의 녹음에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Billie Holiday와 테디 윌슨 Teddy Wilson 등과 더부러 일련의 소규모 그룹 녹음에 출연하여 후세에 길이 남을 역사를 만들어 냈다. 게 다가 BasieKansas City Six 등과 좀처럼 보기 드문 클라리넷 연주를 녹음하면서 Young1950년대 알토 Paul Desmond와 거의 같은 음색으로 서부의 오리지날 Cool 사운드를 들여 주었다. 그가 1940Count의 밴드를 그 만 두고 나온 뒤, 재즈계에서 그의 명성을 이용할 데가 없어 앞날이 캄캄하였다. 그는 194312Basie와 재결 합하기 전까지 그의 동생, 드럼어 Lee Young과 함께 Los Angeles에서 유명무실한 밴드를 공동으로 리더 하였 다. YoungBasie 밴드에 돌아와서 9개월 동안 베이스 주자 Slam Stewart와 같이 잊지 못 할 4인조 밴드로 녹 음도 하고, 그가 군대에 징집되기 직전 `Jammin` the Blues` 단편 영화에 출연하는 등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그가 군대에서 소름끼치는 인종차별 대우를 경험하고 나서 여생을 살아가면서 정신적 심리상태에 많은 충격을 받았다. 많은 비평가들은 제대 후 Lester Young이 좋은 연주를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논평하였다. 하지만 변덕스러운 건강에도 불구하고 40년대 중반에서 말까지가 사실상 그의 전성기였다. `40-`50년대 그는 때때로 J.A.T.P. (Jazz at the Philharmonic)와 투어를 하였는데 Norman Granz가 대우를 잘 해 주었다. 그리고 Aladdin에서 일련 의 멋진 녹음을 하였다. Young1930년대에 이미 익혀놓은 `비밥`을 자기 스타일에 맞게 잘 받아 들였다. 그러나 그는 정신적으로 고통을 많이 받고 있었고, 자기 자신과 외부 세계 사이에 높은 벽을 쌓고, 그의 다양한 어휘를 조용히 개발하였다. 1950년대의 그의 작품은 초기보다 정서적으로 심오하여 더욱더 그 질이 높아졌다. 그렇지만 그를 흉내내는 백인들이 장본인보다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을 보고 마음이 몹시 아팠다. 그래서 그는 엄청나 게 많은 술을 마시고 거의 밥을 먹지 않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1956년 작 Jazz GiantsWashington, D.C.에 서 그는 4인조 밴드와 1957Newport Jazz Festival에서 마지막으로 재결합한 Count Basie 밴드와 함께 최고의 콘디션을 보여 주었다.

 

1957The Sound of Jazz TV 방송에서 그가 Billie Holiday에게 정서적인 불루스 솔 로 한 곡을 연주하여 인기를 끌었지만 Young은 거의 앉아서 연주하였다. 1959년 초 Paris에서 병이 나서 결국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결정적인 술 때문에 결국 죽고 말았다. 그가 죽은 지 수 십 년이 지났지만 오늘날까지 아직도 Pres는 영원한 테너 색소폰 거장 Coleman Hawkins, John Coltrane 등과 함께 이들 3인중의 한 사람으로 손꼽히고 있다.

 

 

 

2.

Harry " Sweets " Edison (1915 10 10 - 1999 7 27 )은 미국의 재즈 트럼펫 연주자이며 Count Basie Orchestra 의 멤버였다.

전기

오하이오 주 콜럼버스 출생. 에디슨은 켄터키 주 루이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후 그의 삼촌에 의해 음악에 소개되었다. 열 두 살 때 콜럼버스로 돌아온 후에, 어린 에디슨은 지역 밴드와 함께 트럼펫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1933, 그는 클리블랜드에 있는 Jeter-Pillars Orchestra의 멤버가 되었다. 그 후 그는 Mills Blue Rhythm Band Lucky Millinder 와 함께 연주했다. 1937 년 그는 뉴욕으로 이주하여 카운트 베이시 오케스트라에 합류했다. 그의 동료로는 Buck Clayton, Lester Young (그의 이름은 Sweets), Buddy Tate , Freddie Green , Jo Jones 및 그 유명한 밴드의 오리지널 멤버가 포함되어있었다. 미국 역사 박물관 (National Museum of American History) 2003 년 인터뷰에서 드러머 Elvin Jones가 에디슨의 별명의 기원을 설명했다 : "스위트에는 여자 친구가 너무 많았는데, 그는 잘 생긴 남자였다. 그는 여자들을 항상 다 갖고 있었기 때문에 SweetsSweets라고 불렀습니다."

"Sweets"EdisonBasie Band의 독주자이자 밴드를 위해 가끔 작곡가 / 편곡가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그는 또한 1944 년 영화 Jammin 'the Blues에 출연했다. 1937 Basie Band에 합류한 Edison1950 년 밴드가 일시적으로 해산 될 때까지 Basie13 년을 보냈다. 이후 Edison은 자체 오케스트라와 협연하여 필하모닉에서 재즈와 함께 다양한 그룹의 리더로서 다양한 경력을 쌓았다. 1950 년대 초, 그는 웨스트 코스트에 정착하여 빌리 홀리데이 (Billie Holiday) , 프랭크 시나트라 (Frank Sinatra ), 엘라 피츠제랄드 (Ella Fitzgerald )와 같은 아티스트들의 녹음에 중요한 공헌을 한 스튜디오 뮤지션으로 급부상했다. 1956년 그는 테너 Ben Webster 와 함께 앨범 3 곡 중 첫 곡을 녹음했다. 1970 년대 재즈 백과사전에 따르면 1960 년대와 1970 년대 Edison은 할리우드 팰리스와 Leslie Uggams Show , 프랭크 시나트라 (Frank Sinatra) 특별전 등 많은 TV 오케스트라에서 계속해서 활동했다. 영화의 사운드 트랙과 사운드 트랙 앨범, Lady Sings the Blues 에서 두드러지게 소개되었다. 1973 년부터 Edison 은 극장 날짜, 콘서트 및 라스베가스 에서 Redd Foxx의 뮤지컬 디렉터로 활동했다 . 그는 사망 직전까지 유럽과 일본에 자주 출연했다. 로스 앤젤레스 재즈 소사이어티 (LAJS)가 처음으로 추모하는 Honoree로서 "Sweets"는 항상 재즈 팬들의 마음속에 특별한 자리를 마련 할 것이다. 에디슨은 83 세의 나이에 오하이오 콜럼버스에 있는 그의 집에서 사망했다.

 

 

 

3.

Oscar Emmanuel Peterson, CC, CQ, OOnt (August 15, 1925 December 23, 2007) 은 캐나다 재즈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이다. 그는 재즈 피아니스트인 Duke Ellington에 으해 키보드의 Maharaja”라고 불렸지만 그의 친구들은 단순히 “O.P.”라고 불렀다. 그는 200여개 이상의 녹음을 하였고 8전의 그래미상을 받았으며 수많은 다른 상과 영예를 안았다. 그는 가장 위대한 재즈 피아니스트 중의 한 사람으로서 60년 이상 지속되는 세계적으로 광범위한 콘서트와 공연활동을 했다.

 

피터슨은 현란한 독주 기법으로 매우 유명하며 캐나다의 팝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뒤 1949년 미국으로 건너가 재즈 흥행가 노먼 그란츠의 카네기 홀 연주회에 출연했다. 1950년대 내내 그는 레이 브라운(베이스), 어빙 애슈비(기타)3중주단을 이루어 그란츠의 재즈 팀과 순회 연주를 했는데 뒤에는 바니 케슬과 허브 엘리스가 브라운과 애슈비를 대신했다.

 

1950년대 후반 기타 연주자 엘리스가 3중주단을 떠난 후에도 그는 그 자리를 드럼 연주자인 에드 시그펜으로 대신하여 스윙과 비밥(초기에는 특히 아트 테이템과 얼 하인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의 전통 속에서 꾸준히 자신만의 독특한 양식을 개발하려고 노력했다. 1960년대 중반에는 루이스가 시그펜을, 샘 존스가 레이 브라운을 대신했다.

 

피터슨은 빌리 홀리데이, 로이 엘드리지, 디지 길레스피, 카운트 베시, 엘라 피츠제럴드 같은 재즈의 거장들과 함께 몇 차례에 걸쳐 장기간 유럽 연주여행을 하고 음반도 취입하면서 폭넓은 청중을 확보했다. 또한 단독으로 음반을 취입하거나 독주활동을 통해서도 널리 인정받았다. 그는 그래미상을 3(1974, 1975, 1977)이나 받았고, 캐나다 공로 훈장도 받았으며, 비평가들과 독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수많은 여론조사에서 종종 최고의 재즈 피아니스트로 뽑혔다.

 

작품으로 재즈 연습곡과 소품 Jazz Exercises and Pieces(1965)·오스카 피터슨의 새로운 피아노 독주집 Oscar Peterson New Piano Solos(1965)이 있다